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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장보고, 해상왕.

 한국의 역사는 조선왕조 500년 이전에 더 찬란한 문명을 발전시킨 위인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시대는 불교문화뿐만 아니라 영토의 확장까지 눈에 띄는 업적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삼국시대 이후 발해와 통일신라, 즉 남북국시대의 통일신라에 있던 장보고라는 인물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장보고는 2004년 KBS2TV에서 배우 '최수종'의 주연인 '해신'이라는 드라마로 그 유명세가 있습니다. 해상왕 장보고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입니다. 고대의 인물이기 때문에 출생은 780년 후반으로 추정되며, 그의 생이 마감도 841~846년으로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의 뛰어난 업적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충분한 도움이 되기에 전설적인 인물로 우리에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장보고라는 인물은 특히 우리가 이 놀라운 해양 선박의 이야기를 이해할 때, 우리는 역사에 대한 고찰을 제공하고 그 시대의 뛰어난 공예가에 대한 빛을 벗겨내는 풍부한 지각력을 발견합니다. 장보고의 매혹적인 세계와 해양 유산에서의 그것의 중요성을 탐험을 이 포스팅에서 시작해보려 합니다. 

장보고가 해상왕이 될 수 있던 이유.

 장보고는 어려서부터 무예에 뛰어났으며, 물에 익숙하였습니다. 청년기에는 당나라에 건너가 생활하다가 서주 무령군에 복무해 장교가 되었습니다. 장교시절 단순하게 복무한 것이 아닌 그들의 병법과 양성방법을 배웠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다시 당나라, 즉 오늘날의 중국 동해와 남으로는 양자강 하구, 북으로는 산동성 등에 신라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운송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라비아, 페르시와 상인과의 교역, 중국과 신라, 일본을 왕래하며 국제무역에 종하사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물에 친숙했던 장보고는 바다에도 익숙했으며, 앞서 이야기한 무역에 더해 해상무역에도 깊은 인상을 받고 또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중앙집권력이 느슨해지며 흉년이 심화되었고, 각지에서 도적이 나타났고, 바다에는 해적이 출몰하였습니다. 해적들은 신라 해안까지 침범하여 주민들을 중국노예로 팔았으며, 무역선들도 위협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들을 알고 있던 장보고는 같은 신라인들을 잡아가는 것에 크게 분노했고 갖고 있던 무역에 대한 욕망과 함께 스스로 해상권을 통치하는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자 하며, 고향인 신라로 돌아오게 됩니다.  신라로 돌아온 장보고는 왕에게 남해 일대에 해군기지를 건설하여 중국 황해로의 무역로를 보호하고 해적을 근절시킬 것을 이야기했으나 귀족들의 반대가 있었고, 그럼에도 장보고는 지방민을 규합하여 민군조직으로 1만여 명의 군대를 확보해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에 청해진을 전설 하였습니다.  청해진을 건설한 뒤, 곧장 해적을 소탕하며 일대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당나라와 신라, 일본을 잇는 국제무역을 주도하게 됩니다.  그의 마지막은 불의에 의한 피살이 되었지만 그가 쌓은 업적은 전설적이고 해상무역의 정점을 이루는 등의 선구적 존재임은 분명합니다. 

 

 

장보고가 남긴 유산과 의미.

 장보고는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에 청해진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지금의 완도에는 청해진 유적이 남아있고, 이는 동북아 해상무역을 주도했던 사실이 드러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위대한 업적이 지금 이 땅에 남아있는 것에 의미도 있으나 장보고가 주는 유산은 여기서 끝이 아닐 겁니다. 비록 문헌을 통해 그의 일부 일대기를 관찰할 수 있었지만 교통, 통신 그 무엇도 발전했다 볼 수 없는 열악한 시절 그는 동북아의 해상을 장악하였고, 일각에는 이 당시 고려라는 나라가 건국되기 이전이지만 '고려청자'는 장보고에 의해 이미 무역 품목에 해당하였고, 고려라는 정확한 발음을 하기에는 어려웠던 일부 인도 상인들이 COREA라고 하며, 한국의 영어식 국가 이름이KOREA라고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결국 아닌 걸로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장보고의 신화적인 이야기는 1980년,1990년대 대한민구 위인전과 역사 교과서의 중요부를 당당히 차지하였습니다.  그의 무역은 비록 당나라에서 본 것으로 시작하였으나 신라로 돌아와 청해진을 세우며 새로운 무역의 활로를 열었으며, 이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긍지를 주고, 신분의 격차가 있던 당시에 높은 직위까지 오른 그의 사업성과 욕망에는 도전에 대한 노력과 열정, 끈기가 있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가능성을 제시하는 위대한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