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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주역 홍범도 장군.

 역사에선 보기 좋은 것만 골라 배워가기에는 아픈 순간도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에도 가슴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외세에 맞서 언제나 싸웠으며, 그들에게 용기와 리더십, 그리고 흔들림 없는 헌신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이 땅과 문화를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배우게 합니다. 비록 현재 정치적 이념과 사상의 마찰로 인하여 다시 한번 아픔을 겪고 있지만 그럴수록 그 이유와 인물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이어나가야 합니다. 

 오늘 이야기할 인물은 홍범도 장군입니다. 홍범도 장군은 1868년 평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렵게 성장하였고, 출생 7일 만에 어머니는 생을 마감합니다. 또 9살이 되던 해에는 아버지마저 여의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작은아버지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지내가다 어느 부잣집의 머슴노릇도 하였습니다. 1883년 15살이 되던 해에 군에 입대하며, 잠시의 안정기를 가졌으나 사회적 모순을 겪게 됩니다. 군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집단인데 부정과 비리를 목격하고 사병들에 대한 학대를 보다 못해 상관에게 해를 가한 후 병영을 탈출하게 됩니다. 

 이후 절에 들어가 승려로 생활하던 중 이순신의 후손인 지담대사로부터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을 비롯하여 당시의 위인들의 활약을 듣고 일제에 분노하였으며, 그의 반일 의식은 고조됩니다. 그의 반일 의식이 고조되던 때, 아이러니하게도 일제는 한반도를 침략하여 친일정권을 수립하고 반일 민족운동인 동학농민운동을 탄압하는 시기였고, 1895년에는 명성황후까지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서서히 일본은 한반도의 주권을 제약하여 나가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봉오동전투.

 1895년 을미개혁이라는 이름아래 지방 행정구역을 개편하고 양력을 사용하게 하는 등 우리나라의 주권을 장악하던 일본은 당시 황후였던 민 씨까지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홍범도 장군에게도 이러한 소식들이 접해지게 되자 그는 의병 할 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런 망국적 상황에서 반일투쟁의식을 부채질한 것은 1907년 총포 및 화학류를 정부와 관청에서 거두어들이고, 위반자를 처벌하도록 한 것인데, 이는 일본이 의병들의 활동을 봉쇄 및 탄압하기 위한 작적이었던 것입니다. 더 이상의 여려 분야에서 침략행위를 하는 일본의 만행을 가만히 둘 수 없던 홍범도 장군과 의병들은 그 세력을 모아 의병부대를 결성하게 됩니다. 이후 홍범도 장군은 만주를 거쳐 연해주로 1차 망명하기까지 수십 차례 일본군과 격전을 치렀으며, 일본인의 금광을 습격하여 군자금으로 이용하는 등 실로 대담한 작전을 실행합니다. 국내에서는 반일항쟁으로 문화와 정치적인 행위가 이루어졌다면 하기 힘든 제대로 된 무력시위는 만주와 연해주등에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이후 1919년 3.1 운동이 국내에서 발생하자 홍범도 장군은 제대로 된 독립전쟁을 할 수 있는 계기로 여기고 항일무장투쟁을 하게 됩니다. 유명한 전투인 봉오동전투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봉오동전투는 지형을 이용한 전술 구사와 사즉생의 결의로 일본군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운 강인한 독립정신에서 그 승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홍범도장군이 남긴 유산과 의미.

 홍범도 장군의 유산은 전장을 훨씬 넘어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의 불굴의 정신과 정의에 대한 헌신은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개인들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줍니다. 현재 홍범도 장군이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 이념과 사상의 기본 틀인 민주주의사상에 반하는 공산주의 사상을 가졌던 인물이라 하며, 2021년 어렵게 봉환된 그의 유해를 78년 만에 카자흐스탄에서 조국의 품에 돌아오게 하고 그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 세우고는 2023년 이념의 이유로 철거를 논쟁하고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의 독립에 대한 헌신과 역경에 직면한 그의 희생은 한 사람의 변함없는 결심이 역사의 흐름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작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상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 이 땅에 과거 현재의 북한의 사상인 공산주의의 시초인 스탈린의 공산주의가 아닌 레닌의 공산주의시절의 홍범도 장군임에도 그 가치를 폄훼하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라는 정치적 사상과 이념보다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수많은 조상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수호하고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행동을 했지 정치적 이념은 결코 그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을 겁니다. 오늘날, 홍 장군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회복력과 리더십의 힘을 상기시키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 문학, 기념비를 통해 그의 유산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업적을 기억할 때, 우리는 그의 용기, 성실, 그리고 밝은 미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가치를 구현하도록 격려받고 있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삶은 한 개인이 역사의 흐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증거입니다. 초라한 시작부터 전장에서의 승리까지, 그의 이야기는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의 원천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지금의 우리를 되돌아보면서, 그의 삶과 유산을 반성하면서, 그 자신보다 더 큰 대의에 대한 그의 변함없는 헌신에서 힘을 끌어내고, 그의 기억이 우리의 마음에 용기의 불꽃을 계속 점화하여 옳고 그름을 가르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