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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뼈아픈 역사 6.25 사변
동북아시아에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역사 속 중앙집권적 국가이지만 외세의 침략을 막고, 수많은 전란에도 지속적으로 국가를 유지했던 땅이 있습니다. 바로 한반도, 대한민국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남한과 북한이라는 국가로 분열되어 있으며, 분열에는 사변이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 (구) 소련과 미국의 정치적 간섭아래 이념은 양분화되었습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지속된 이 사변은 한반도와 국제정치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민족으로서 일제탄압에 맞서다 이념상의 마찰로 서로 총칼을 겨누고, 이 땅을 황폐화시키고, 이산가족을 만들고, 고아를 만들고, 국가의 발전을 막은 이 뼈아픈 역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되며, 세대가 교체됨에 따라 의미를 퇴색시키거나 올바르지 않은 교육으로 훼손해서는 안될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블로그 포스트에서는 한국전쟁의 원인과 주요 사건, 그리고 지역과 세계에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이념의 싸움
당시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시절 일본의 패전국이 됨에 따라 해방을 맞이한 후 국가의 독립을 약속하는 카이로회담을 뒤로한 채,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당시 세계를 양립하고 있던 소련과 미국이 내정에 간접함으로써 국토의 분단이라는 비참한 운명에 처해지게 됩니다. 소련은 당시 스탈린의 공산주의로 지금의 북한에 자리 잡으며, 남한과 북한 간의 왕래와 일체의 통신연락을 단절시키며, 38도선을 남북을 가르는 정치적 경계선으로 만들고 그들의 정치적 이념을 기준으로 삼는 공산화통일을 고집하였습니다. 한반도라는 땅은 위치적으로 동북아시아 끝에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공산국가와 일본이라는 패전국가이지만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가 되는 땅의 가운데에 위치하며, 군사적, 지리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까닭에 소련과 미국은 이 땅의 점령과 그에 따른 이념의 갈등에서 손을 놓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런 갈등이 지속되니 해방 2년 뒤인 1947년 미국은 남한의 단일정부의 수립과 신탁통치의 실시를 전제로 한반도를 통일하려 했던 정책을 포기하고, 분단의 고정화라는 기정사실을 바탕으로 소련에 영향력을 막으려 하였습니다.
분단국가, 사변은 남침인가 북침인가?
여기서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 6.25 사변으로 분단국가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을 한 일본은 당시 한반도에 주둔하여 있었고, 소련은 관동지방을 통하여 일본군을 소탕하며 한반도의 북쪽으로 남하하였고, 미국은 인천을 통하여 일본의 잔당을 소탕하여 각기 지금의 북한과 남한에 자신들의 이념을 정착하려 하며, 언뜻 보면 일본처럼 강제적 탄압은 아닌 것처럼 보이나 강대국에 의한 제국식민주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이념주입과 함께 전략적 요충지를 섭렵하기 위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즉, 당시 세계를 양립하고 있던 두 개의 거대한 세력으로 이미 분단을 한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 6.25 사변이라는 것입니다.
1948년 지금의 남한은 유엔의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 선거실시가 이루어지며, 유엔 감시하의 자유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국회가 구성되었고, 그 해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건국이 세계에 선포되었습니다. 소련은 김일성을 주석으로 세우며 북한은 동일 해에 9월 흑백선거에 의하여 독자적 정권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습니다. 선포에는 소련을 비롯한 공산 제국의 승인을 통한 것이었습니다. 동일 해에 12월 유엔총회는 한반도에 존재하는 유일한 합법정부는 '대한민국 정부'라고 결의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확인되었습니다.
민족성을 잃을 뻔한 일제강점기에서 세계의 거대세력에 의한 한반도의 분단, 이렇게 우리의 근현대사는 아픔의 연속을 겪어야 했습니다. 1950년 6월 잠시의 평화 기를 맞으며, 남한은 농번기를 맞이하여 군인들은 휴가를 내고 본가로 돌아가 자신들의 집을 돌보는 등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6월 25일 새벽 5시. 재래식 화포와 탱크로 중무장한 북한군이 남침을 합니다. 사변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습니다.
남침이냐, 북침이냐 헷갈리시는 분들을 위해 잠시 설명합니다. 북한의 남한 침략이기 때문에 남침이 올바른 표현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사변은 북한군의 승리로 보일 정도의 파죽지세로 남한은 점령당하기 시작합니다.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에서 버텨가며, 미국과 UN군의 참전을 기다립니다. 이후 그들의 개입으로 다시 남한의 승리를 엿보나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한 전쟁의 장기화로 양측은 최종 판문점에서 휴전을 협약, 오늘날까지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사변의 긴장 속에 두 국가는 여전히 분단되어 존재고 있습니다.
6.25 사변을 바라봐야 하는 우리의 자세.
어느덧 7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사변 이후는 소련의 몰락 후 러시아의 등장, 남한의 신탁통치였던 미국과의 한미동맹이라는 동맹체제, 북한의 3대 세습등 강산과 함께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한, 즉 우리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할 만큼 이 사변에 참전했던 타국의 고마운 용사들이 재방문했을 때 놀랄 정도의 발전을 이루었고, 군사적, 정치적으로 성장하며 강대국의 길로 진입하려 합니다. 작은 이 땅을 수호하기 위한 조상들께 위로와 감사함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아직 이 땅의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닌 휴전을 한 상황입니다.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국방의 의무를 하며, 이념에 대한 패배를 하지 않기 위한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나라를 수호하고 있으며,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을 존재시키기 위해 우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직 세계 역시 이념적 양분화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의 주둔을 강화하는 데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한국전쟁은 수백만 명의 사상자와 가족의 분열로 인도주의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전쟁은 종종 간과되겠지만, 세계무대와 한반도에 미친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냉전시대 초강대국 경쟁의 도가니로 작용하여 아시아의 지정학적 지형을 재편한 것입니다. 분단된 한반도는 오늘날까지도 이 분쟁이 남긴 영원한 유산의 증거로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는 동북아시아의 복잡한 역사와 지정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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