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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대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
1875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난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48년 7월부터 1960년 4월까지 대한민국 1,2,3대 대통령을 엮임 한 초대 대통령입니다. 당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광장에서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은 개식, 애국가제창 및 국기에 대한 경례, 취임선서, 대통령 취임사, 부통령 취임사, 축사 및 축전 낭독, 만세삼창, 폐회 등의 식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위로 형제가 있었으나, 그들이 일찍이 사망하여 집안의 장남으로 성장하였습니다. 1877년 서울로 이사 온 그는 1894년 당시 조선의 관직시험인 과거제도가 폐지되자 배재학당에 입학한 뒤 청년단체인 협성회에 참여하여 주간신문인 '협성회 회보'를 창간해 주필을 맡았습니다.
1898년에는 러시아의 이권침탈을 규탄하기 위해 열린 만민공동회에 참여하며 독립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였으나 고종 황제 폐위 음모사건에 연루되어 한성감옥에 투옥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19년 3.1 운동 직후 노령임시정부 외무총장으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4월에는 상해임시정부에서 국무총리로, 한성임시정부에서는 집정관총재에 임명되었습니다. 그 해 6월 대한민국 대통령의 명의로 각국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한편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설치하였으나, 임시정부 규정에 없는 대통령 직책을 사용하며 안창호 선생과 갈등을 빚기도 하였습니다.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은 1919년 9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하며, 그는 약 6개월 동안 대한민국 임시정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반독재 민주항쟁 4.19 혁명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10월, 이승만 전 대통령은 조선인민 공화국의 주석과 한국민주당의 영수직을 거절하며, 그 해 10월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조식해 회장에 추대되었습니다. 이후 1948년 7월 20일 국회에서 선거에 의해 대한민국 대통령에 선출되어 7월 24일 대통령에 취임하였습니다.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새로움 통치이념으로 '일민주의'를 내세웠고, 그 뜻은 모든 사람은 국가 앞에 평등해야 하며, 그 평등 위에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해 12월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으로부터 승인을 받습니다.
1951년 11월 자유당을 조직하며, 국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게 되어 있는 헌법을 국민이 집접 선출하는 것으로 개헌을 추진하기도 합니다. 이런 개헌 추진 과정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이루어지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등이 있겠습니다. 12년간의 장기 집권을 한 이승만 정권은 3.15 부정선거까지 자행하며, 국민의 울분을 사게 됩니다.
그러던 중 4월 11일 1차 마산시위에서 실종되었던 고등학생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었고, 이후 4월 18일 고려대학교의 3천여 명의 학생들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 들자>는 선언문을 낭독,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였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가던 중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았고, 일부 학생들은 큰 부상을 입게 됩니다. 그렇게 분노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들이 다음 날인 4.19에 총궐기하여 독재정권 타도를 외친 날이 오늘날 4.19 민주항쟁 또는 4.19 혁명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로 보는 문제점.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19세기 후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근대사회가 이전사회랑 다른 부분은 조선후기의 신분 질서의 해체, 상품 화폐 경제의 발 달고 자본주의의 면모가 보이고 정치, 사회, 문화적인 대대적이 개편이 들어가는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8.15 광복 직후 분단의 과정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런 과정에서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국가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던 대한민국은 빠른 만큼 놓친 것들도 많을 것입니다. 결코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쌓은 후 옳지 않은 것을 바꾸는 과정은 그 대립이 심화될 수 있고, 세대 간의 갈등을 나타나게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옳지 않은 것을 바꿀 때, 희생되었던 수많은 인물들에게서 개화와 혁명의 정신을 배울 수 있습니다. 너무 앞만 보고 간다는 것은 분명 우리에게 후회를 남기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서 좋은 것만 끄집어내어 배우기보다 옳지 않던 행위에 대항하던 정신을 보고 개척해 나가야 할 미래에 대해 부족한 부분을 접목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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